흔히 한 나라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는 것이 제조업 수준이다. 기계, 화학 등 제조업 기술력이 두터울수록 기업 경쟁력이나 경제 수준에서 앞선 위치에 있다. 그런데 기술제조업 분야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회전 장치다. 모터로 불리는 회전 장치는 제조 산업에 있어선 반드시 필요한 기본 장치다. 단적인 예로 자연적인 현상을 에너지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모터가 필요하다. 수력이나 원자력, 풍력, 조력, 화력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원을 전기로 바꿔 산업 현장이나 가정으로 보내주려면 모터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모터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베어링(Bearing)이다. 베어링은 회전하는 물체가 움직이는 부위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줄여주는 부품으로 작게는 자전거 바퀴, 자동차 엔진부터 크게는 발전소 터빈에까지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다. 특히 발전소, 항공기, 대형 선박에 사용되는 터빈이나 모터에는 초고속, 초고압, 초정밀 베어링이 장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주로 유체윤활베어링(회전축과 베어링 사이에 기름이 차 있는 방식)이 사용된다. 유체윤활베어링은 엄청난 열과 압력, 무게를 오랫동안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조가 불가능하다. 유체윤활베어링 분야에 설계, 제조가 가능한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전 세계를 통틀어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4개 나라에 불과한 것도 이 분야가 그만큼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 12년 전 우리기업이 도전장을 냈다. 주인공은 경남 창원의 중소기업 터보링크다.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인 하현천 대표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나와 회사를 창업한 것은 지난 2001년 무렵. 창원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사업을 준비하면서 당시 정부의 BK21사업 도움을 받아 창업한 덕분에 터보링크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베어링 설계,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유체윤활베어링 분야에서 설계부터 제조까지가 모두 가능한 곳은 터보링크가 유일하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독일, 미국의 경우 각각 3개사, 영국 2개사, 일본 1개사 등 9개 회사만이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00년 역사 서구 기업에 도전장 내 성공
터보링크가 베어링을 만들기 전까지 관련 분야는 해외업체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한 일이라고는 완성된 베어링을 해외에서 사오거나 한물 지나간 제품의 도면을 보고 제작해 유지보수 제품에 납품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 하현천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 자랑이라서 쑥스럽습니다만, 우리가 만든 베어링이 우리 산업계에 미친 파급력은 상당하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삼성테크윈만해도 우리가 만들기 전까지 부품 전량을 해외에서 조달해와 썼습니다. 지난 1995년부터 고속공기압축기를 만들었는데 거기 쓰이는 핵심 부품이 베어링이거든요. 삼성테크윈에서 만드는 고속공기압축기가 쓰이는 곳이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지금 우리가 해외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분야들입니다. 소위 ‘컴프레서’(Compressor)로 불리는 고속공기압축기는 관련 산업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이죠. 거기에 우리 제품이 사용되기 전까지 삼성테크윈은 원청업체임에도 하청업체인 베어링 제조사의 눈치를 봐야 했어요. 그걸 우리가 대신 제작해 납기일도 당기고 가격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리니 당연히 원가경쟁력이 살아날 수밖에요.”

삼성테크윈과 현대중공업 등 국내 제조업체의 기술경쟁력 향상과 더불어 터보링크는 세계시장에서 무서운 신예로 급부상했다. 세계시장에서 터보링크의 경쟁사로 분류되는 곳은 독일 렌크, 미국 킹스베리·와우케 등으로 하나같이 기업 역사가 100년 이상된 곳들이다. 영국 미첼은 회사 설립시기가 1880년대까지 올라간다.

이후 터보링크는 ‘중소형 터빈용 틸팅패드 저널’과 ‘스러스트 베어링’을 제작·납품하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유체윤활베어링 전문 제조회사로 발돋움했다. 

“가장 역사가 짧은 일본 기업도 회사가 세워진 지 80년이 넘을 정도로 우리가 경쟁하는 분야는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습니다. 값이 싼 베어링을 써 제품 자체가 고장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서 납품가는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얼마나 오래, 마모가 덜되면서 안전하게 유지되느냐가 중요하죠.”

지난 몇 년간 계속된 엔고로 원가절감 수요가 커진 일본 기업들이 최근 터보링크 문을 노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구보타(Kubota)는 일본 농기계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꼽히는 일본 내 대표고객이다. 영국 미첼사와 일본 다이토사가 만든 베어링을 써오던 구보타는 지난 2009년부터 일본 내 공급된 상하수도 펌프에 터보링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경남 창원의 터보링크 공장에서 생산된 특수베어링 앞에 선 하현천 대표.

일본 대형 농기계 제조사 구보타에 부품 공급
“구보타 직원들이 그러더군요. 일본 내수 기간산업에 쓰이는 제품에 한국 부품이 사용된 경우는 터보링크가 처음이라고요. 일본 입장에서는 그전까지 특히 부품, 소재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 기술력을 한 단계 아래로 봤거든요. 그런데 구보타가 우리 것을 쓰니 다른 기업들이 우리를 대하는 시각도 달라지더군요.”

현재 터보링크는 일본 상하수도 펌프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에비라 외에 도리시마, DMW에도 테스트용으로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일본 내 수출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해외 판매 비중을 높이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경남 김해에 연건평 6667㎡(2000평) 규모의 공장을 새롭게 지었다. 아울러 코트라(KOTRA) 해외무역관을 활용한 지사화 사업도 꾸준히 추진 중이다. 현재 터보링크는 일본 오사카 외에 중국 상하이, 인도 뭄바이, 핀란드 헬싱키, 스페인 마드리드 무역관 등 총 5개 지역의 코트라 무역관을 통해 해외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일본 다음으로 우리가 공략할 시장은 중국입니다. 시간이 지나 일본으로 납품된 제품에 대한 안정성만 입증된다면 연간 1000만달러 매출은 꿈 같은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풍력, 조력, 수력 등 친환경 에너지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성공신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 송창섭 기자 (realsong@chosun.com )